이매야행

(25. 05. 05) 이매야행 魑魅夜行 (上)

RJG 2025. 5. 6. 01:14
 
 
 
그 魑魅가 일컫길 금년 금일의 밤은 鬼會라 하였다.
 
 
Written by 금 귤
 
Date 2025. 05. 05
 
 
현무 1팀
 
시점을 구태여 콕 집어 말하자면,
 
청동 요원이 막 신입 티를 벗어갈 무렵.
 
여전히 앞뒤 꽉꽉 막힌 원칙주의를 고수하며 제 선임에게도 핏대를 세우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다음 날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나란히 단 커피와 쓴 커피를 나누어 마시면서 아주 요란한 대기실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당시는 유달리 초자연 재난의 변칙성이 올라가고 재난의 형(刑)이 상향되는 일이 잦던 시기로,
 
두 요원의 요원복엔 항상 미미한 향 냄새가 묻어있었었죠.
 
그럼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흘러가던 어느 날의 월요일.
 
주간 보고를 마치고 돌아온 최 요원이 대기실 문을 벌컥 열자,
 
아이템을 정리 중이던 청동 요원이 고개를 듭니다.
 
청동 요원:오셨습니까.
 
꽤 분주한 걸로 봐서는 구조 신호라도 들어온 모양이죠.
 
구태여 묻지 않아도, 청동 요원이 덧붙입니다.
 
청동 요원:마선국에서 온 구조 신호입니다.
 
아, 마선국. 오랜만에 듣는 이름입니다.
 
도깨비의 나라, 마선국(魔仙國).
 
다른 도깨비 나라마저 배제하고 철저히 고립 중인 곳인데,
 
당연하게도 재난관리국과도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죠.
 
인세에서 잘못 흘러 들어가는 시민들을 정기적으로 구출할 때에만 드나드는 곳.
 
마선국의 도깨비들은 오히려 인간을 두려워 하는 쪽이기에,
 
관리국의 요원들이 시민 구조를 위해 드나드는 걸 암묵적으로 봐주곤 있다지만,
 
이따금 수틀리면 사망자가 나오기도 해 초자연 재난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마선국 내에서는 도깨비 장난도, 도깨비불도 쓰지 못하는 데다
 
도깨비 공방에서 만든 아이템을 쓰지 못한다는 제한 때문에
 
때에 따라 구출이 까다롭다는 평이 나있으나,
 
베테랑 요원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청동 요원: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마… 저녁 먹기 전엔 돌아올 겁니다.
 
격려의 인사라도 한 번 해줄까요?
 
최 요원:누가 뭐래도 재난인 거 꼭 잊지 말고! 늦어도 되니까 돌아오기만 해라~ 파이팅!
 
청동 요원:...예, 파이팅.
 
대기실을 나서는 청동 요원의 등을 빤히 바라보던 최 요원은,
 
괜스레 제 목의 흉터를 만지작거립니다.
 
…으음, 오늘따라 조금 욱씬거리네.
 
조용히 닫힌 현무 1팀 대기실의 문은,
 
저녁이 다 되어서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청동 요원이 실종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자필로 쓴 쪽지 한 장만이 최 요원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청동 요원
 
: 엄마아아아… 아빠아아아….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 뚝! 울면 이놈 아저씨 오신대. 이놈 아저씨 알아? 엄청 무서운 아저씨인데.
 
: …무서운 아저씨야?
 
: 응, 소연이가 울면 소리 듣고 찾아오신다는데?
 
: …크응.
 
: 옳지. 눈도 따갑잖아. 씩씩하게 나가야 엄마랑 아빠가 소연이 얼굴도 알아보지!
 
청동 요원:…….
 
그래, 구조자가 두 명으로 늘어난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죠.
 
이곳은 오방색 운동화 끈도 사용할 수 없는 곳이지만...
 
적절한 매뉴얼만 따른다면, 인원 수와 상관없이 무사히 탈출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 못 가. 차라리 저 여자는 두고 가.
 
그의 앞에 처음 보는 이레귤러의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청동 요원은 반사적으로 전투 태세를 갖추었으나,
 
눈 앞의 존재가 가진 힘은 한낯 인간의 전투력 따위 상회했습니다.
 
무력으로는 제압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청동 요원이 대화를 시도합니다.
 
청동 요원:당신, 누구십니까.
 
???: 나는……
 
그의 입이 움직이고, 이름을 들은 청동 요원의 눈이 커집니다.
 
???: 너희가 다 나가면 마선국이 위험해. 적어도 한 명은 남아야 돼.
아, …너도 바깥에서 온 김서방이지? 도깨비 힘 쓰는.
저기, 혹시 나랑 거래 하나 하지 않을래?
 
청동 요원:……거래?
 
청동 요원은 문 앞에 서있는 시민 둘을 바라봅니다.
 
한 명만 데리고 나가는 것도 불가능.
 
셋 다 나가는 것도 불가능.
 
변칙 상황, 뒤틀린 매뉴얼.
 
그리고… 초자연 현상과의 거래.
 
청동 요원:…거래 내용은?
 
???: 간단해.
네가 허 도령이 되어 줘. 그리고 내 대신 탈을 만드는 거야.
 
청동 요원:……!
 
???: 대신 문은 계속 열어둘게. 우리도 주기적으로 인간의 양기가 필요하거든.
그러니까… 언젠간 네 동료가 널 구하러 올 수도 있지 않겠어?
 
청동 요원:……그럼, 하나만 물읍시다.
마선국과 바깥 세계의 시간이 흐름이 다르다는 것쯤은 압니다.
...다음 사람이 오는 주기는.
 
???: 그거야 때에 따라 다르지만… 다음 축제에 맞추어서 열리는 건 이 정도?
 
남자가 펼친 손가락의 개수에 청동 요원의 눈이 가라앉습니다.
 
곧, 그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적어 내립니다.
 
청동 요원:...당신과 거래하겠습니다.
저 사람들을 무사히, 온전하게 집으로 보내는 조건입니다.
 
???: 결정이 빠르네. 혹시 바깥에 미련이 없어?
 
청동 요원:...아니요.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요.
 
청동 요원이 두 사람에게 쪽지를 쥐여주며 말합니다.
 
청동 요원:여기서 나가시면, 당신들을 데리러 온 사람들에게 이걸 꼭 전해 주십시오.
 
: 네? 어… 어, 아저씨는요?
 
청동 요원:저는 아직 해결 못 한 일이 있어서 여기 남아야 합니다.
여러분처럼 이곳에 실수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게 문을 닫아야 하니까요.
그러니 먼저 나가 계시면 됩니다. 원래 이런 건… 어른이 하는 겁니다.
 
: 정말이죠? 그거 막, 영화에서 보면 사망플래그 같은 대사인데?
 
청동 요원:…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겁니다. 자, 어서.
 
그렇게 두 사람의 등을 떠민 청동 요원이,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하고 돌아섭니다.
 
???: …자, 이제 네 거야.
 
그가 내민 것을,
 
청동 요원:…….
 
청동 요원이 받아 듭니다.
 
이것은 죽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청동 요원:……하, 참 나.
 
마지막에 떠오른 얼굴이 그 사람이라니.
 
그것을… 얼굴에 뒤집어 쓰는 그때부터.
 
청동 요원의 의식은 멀어집니다.
 
???: ......마선국에 온 걸 환영해, 류 도령!
 
 
청동 요원이 구조를 위해 마선국에 들어갔다가 실종 처리된 지 한 달.
 
구조자가 들고 나온 쪽지 내용에 따르면 변칙 상황이 발생했고,
 
설상가상으로 마선국 진입로였던 민속촌의 우물이 막혔습니다.
 
재난이 종결된 것이다 주장하는 이도 있었고,
 
변칙 발생으로 진입로가 바뀐 거라 주장하는 이도 있었지만…
 
후자에 희망을 걸고 있던 최 요원에게 희소식이 전해집니다.
 
해금 요원:최 씨야. 찾았다, 마선국 진입로.
우리 쪽 애 하나가 도깨비불 들고 퇴근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대.
 
그렇게 말하며 해금 요원이 보고서 하나를 내밉니다.
 
해금 요원:두라산역이라고… 4호선 막차를 탄 채로 잠들었다 깨면 무작위로 도착할 수 있는 역이랜다.
그래도 너라면 금방 찾아낼 수 있을걸?
 
무작위라고는 하지만,
 
최 요원 정도 되는 베테랑 요원은 확실한 루트나 다름 없습니다.
 
해금 요원도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건네준 방법일 테고요.
 
해금 요원:대신… 하나 우려되는 점이 있는데.
너도 알지?
청동이, 거기 너무 오래 있었어. 어쩌면 당장 데리고 나오기 힘들 수도 있다.
생사 확인이 최우선 순위고, 살아있는 것만 확인되면 구조는 더 신중하게 접근해보자.
재관이 걔가 깡다구 하나는 좋잖아. 아마 너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겠지! 아니냐?
 
최 요원:일단 누님 말대로 얼굴이라도 봐야 생각을 하죠. 쪽지 하나 딸랑 보내두고 기다리는 게 깡이 있어도 너무 있어요. 아오, 그래도 아직 신입인 게 좀 독하면 밉지라도 않을 텐데!
 
해금 요원:하하! 내 말이 그 말이야. ...가서 후배 잘 챙겨서 데리고 나와. 지금이야 애간장 좀 타도 나중엔 이것도 다 추억 아니겠어?
그러니까 인상 펴고. 재관이가 보면 또 뭐라 한다.
 
해금 요원은 인자한 표정으로 당신의 등을 토닥입니다.
 
그렇게 최 요원은 4호선 막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一. 중천에 크게 뜬 저 둥근달
 
덜컹.
 
이번 역은 4호선 역으로 갈아타실 수 있는 서화, 서화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눈을 떠보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하철 안의 전등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면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마지막 역인 두라산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내리실 때는 차 안에 두고 내리는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두리산역.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역으로,
 
해당 안내 방송을 들었다면 무사히 초자연 재난에 진입한 것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열차 문이 열립니다.
 
…내려볼까요?
 
최 요원:(무작위라고 하니 아무리 자신 있어도 눈 붙이기 편치 않았는데. 주변 짧게 둘러본 후 일어나 역에서 내린다.)
 
지하철
 
지금 시간은 12시입니다.
 
역도 곧 문을 닫으려고 하는지 불이 점점 꺼지는 게 보입니다.
 
역무원들은 슬레이트를 내려 문을 잠가버린 것 같습니다.
 
뭐부터 해야 하나… 허리를 짚고 있으니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옵니다.
 
역 안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바람은 지하철역 출구에서 불어오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퀴퀴한 공기가 아닌 맑은 공기입니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향해보아도 그곳엔 텅 빈 선로만 존재합니다.
 
대체 정확히 어디서 공기가 불어오는 건지.
 
✷ 듣기 판정 ✷
 
최 요원: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73
판정결과: 보통 성공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구석에 일그러진 공간이 보입니다.
 
다른 벽들과 미묘하게 다른 공간 속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풀벌레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정신력 판정 ✷
 
최 요원: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문득, 손을 넣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최 요원:으음, 여기가 감이 오는데? (일그러진 공간에 손 집어넣는다.)
 
조심스럽게 넣자마자 벽 안으로 들어간 손에는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안은 시원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원래 벽이 이랬나? 생각하기도 전에 어?
 
안쪽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긴 것처럼 강하게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역시 이거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지?
 
이윽고 몸 전체가 검은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二. 금수강산 삼천리에 쏘다니니
 
 
이곳으로 잡아당기던 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신, 갈 곳을 잃은 몸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높은 높이가 아니라는 게 다행인지,
 
여기가 어딘지 똑똑히 아는 게 불행인지….
 
주변을 살펴보면 아까 들리던 풀벌레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습니다.
 
해가 내리쬐고, 하늘은 청명하기까지 하네요.
 
당신이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새벽이었는데 말입니다.
 
문이 있던 곳을 살펴보려고 하니 온데간데없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큰 나무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 그래도 무사히 마선국에 도착했군요.
 
해가 떠 있고, 땅도 푹신한….
 
……
 
푹신?
 
: 언제까지 깔고 앉아 계실 겁니까.
 
아.
 
: 저리 비키십시오.
 
듣고 싶었던 목소리입니다.
 
고개를 들어 바닥을 내려다보면….
 
버들 도령:무겁소.
 
탈을 쓴 누군가, 아니 청동 요원이 깔려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 이래서 푹신했군요?
 
그는 당신을 팍! 밀어내곤 몸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얼굴의 대부분이 나무 탈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나마 보이는 입은 하관에 탈이 붙어있지 않습니다.
 
저건… 이매탈?
 
버들 도령:당신, 인간입니까?
하… 또 시작이군.